인터넷, 유인물 등에 사용한 폰트(글꼴, 서체) 파일의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경고장이나 연락을 받았다는 일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색해 보면 폰트파일은 저작권으로 보호되지만, 폰트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 특정 폰트를 사용하여 결과물을 산출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폰트는 글자체 디자인으로서 디자인 보호법으로 보호받는다고 하는데, 이쪽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폰트(글꼴, 서체) 파일의 사용과 관련된 저작권, 디자인권, 그리고 사용계약의 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서체를 이용하는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서체도안 자체는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 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A씨가 만든 서체를 B씨가 그대로 흉내내어 만들든지, 아니면 서체를 이용하여 어떤 인쇄용 도안 등을 만들어낸다면 이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체를 사용하여 인쇄용 도안을 만들든지,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서체 제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법원의 입장은 서체는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입니다. 그러나 서체를 모방하는 것은 디자인권으로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하여는 아래 "폰트(서체)와 디자인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저작권법은 서체도안의 저작물성이나 보호의 내용에 관하여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며, 인쇄용 서체도안과 같이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창작된 응용미술 작품으로서의 서체도안은 거기에 미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실용적인 기능과 별도로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OOOO 등 서체도안들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여야 할 문자인 한글 자모의 모양을 기본으로 삼아 인쇄기술에 의해 사상이나 정보 등을 전달한다는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하여, 우리 저작권법의 해석상으로는 그와 같은 서체도안은 신청서 및 제출된 물품 자체에 의한 심사만으로도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 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하지 아니함이 명백하므로, 등록관청이 그 서체도안에 관한 등록신청서 및 제출된 서체도안 자체에 의한 심사 결과에 따라 그 서체도안이 우리 저작권법의 해석상 등록대상인 저작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 당해 등록신청을 반려한 조치는 적법하다. 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5632 판결 |
2. 서체파일은 저작권의 영역에 포함
그러면, 만일 A씨가 합법적으로 구입한 서체파일(폰트)을 B씨가 무단 복제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서체파일"은 컴퓨터프로그램에 해당하여, 제작자의 창의적 개성이 표현되어 있으므로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비트맵 폰트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트루타입이나 오픈타입 등 윤곽선 폰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윤곽선 폰트는 그 파일 내에, 윤곽선에 대한 제어점의 좌표 값과 그 지시사항 등이 있어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일종의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체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않지만, 그것을 구현한 폰트 파일은 제작자의 창의적 개성이 포함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정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서체를 새로 만들 때의 창의성이 그 서체를 폰트 파일로 만들 때 필요한 창의성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서체 자체에 저작권을 인정하면 실용적인 목적에서 사용이 극히 어려워지므로, 어쩔 수 없는 결론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작자의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 서체 파일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것은 막아야 했기에, 이러한 논리가 산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서체파일이 지시·명령을 포함하고 있고 그 실행으로 인하여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며 컴퓨터 등의 장치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단순한 데이터파일이 아닌 구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상의 컴퓨터프로그램에 해당하고, 그 제작 과정에 있어 글자의 윤곽선을 수정하거나 제작하기 위한 제어점들의 좌표 값과 그 지시·명령어를 선택하는 것에 제작자의 창의적 개성이 표현되어 있으므로 그 창작성도 인정된다. 대법원 2001. 5. 15. 선고 98도732 판결 |
3. 폰트(서체) 와 디자인권
폰트 디자인(서체)은 2005년 7월부터 "글자체 디자인"에 해당하여 디자인보호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보호법으로 보호를 받으려면 창작 즉시 발생하는 저작권과 달리 디자인 등록출원을 하고 심사를 받은 뒤, 디자인권의 설정등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권은 조판이나 인쇄 등 통상적인 과정에서 글자체를 사용하는 경우나, 글자체의 사용으로 생산된 결과물일 경우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디자인권은 서체를 개발하는 업체 사이에서 서체(글자체)를 베끼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이지 폰트의 사용에 관하여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체의 디자인권은 출원 후 20년까지의 기간 동안, 설정등록일부터 독점배타권으로 보호를 받으며, 갱신되지 않습니다.
4. 폰트(서체)파일의 용도 외 이용의 문제
자, 이제 서체파일을 무단으로 복제하지만 않으면 사용하는 데에는 저작권의 문제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제작자가 서체파일 사용시 용도를 한정했을 때 그 용도 외에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서체파일을 제공하면서 제작자가 "인쇄물에는 사용 가능, 웹에는 사용 불가, 기업 로고에 사용 불가"라고 지정하였는데도 웹이나 기업 로고에 사용했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사용자 계약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사용자는 서체파일을 제공받음으로써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사용 계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가 그 사용 계약을 위반하였다면 서체파일 제공자는 서체 파일의 사용 중단 및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서체파일을 제공받을 때의 조건 외에 서체파일을 사용하려면 제작자와 협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폰트(서체파일) 제작자는 비영리용일 때 보다는 영리용일 때, 인쇄물보다는 웹에 사용될 때 등에 더 높은 사용료를 책정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잘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가끔 법무법인 등에서 서체파일을 사용했다고 저작권법 위반으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한다며 경고장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용 계약 위반은 민사상 문제임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그러나 서체파일 자체를 무단으로 복제하였다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상 책임도 질 수 있습니다. 놀란 마음에 성급히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기보다는,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와 상담하셔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문헌: 윤기승, "폰트와 폰트 파일의 법률적 보호에 대한 연구", The Journal of Law & IP 제9권 제2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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